이단과 종교에 관련된 질문들
이단에 대한 정의는 무엇인가?
질문: 이단에 대한 정의는 무엇인가?
대답: 우리는 자주 이단은 사탄을 숭배하거나, 동물을 제물로 받치거나, 악하고 파렴치한 종교의식을 행하는 집단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대부분의 이단은 그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정결한 모습을 지닙니다. 그들은 성경적 진리의 한 두 가지 부분만을 거부하곤 하는데, 믿어도 구원을 주는 진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즉 일반적인 종교와 다른 면을 찾는다면, 이단은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주장하면서 성경적인 기독교를 이루고 있는 근본적 진리들은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대표적인 가르침은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었고, 둘째, 구원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근거로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 죄를 담당하는 대가가 될 수 없다 합니다. 그리고 오직 믿음에 의한 구원을 부인하면서 말하길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하는데 이는 성경이 말하는 것과 정반대 되는 것입니다. 대표적 예로, 여호와의 증인과 몰몬을 들 수 있겠습니다. 두 그룹 모두 자신을 크리스찬이라 하지만, 그 두 종파 모두 방금 언급한 가장 중요한 교리를 거부합니다. 여호와의 증인과 몰몬은 자신들이 믿음이 성경과 부합한다고 봅니다만, 그리스도의 신성과 믿음에 의한 구원을 부인하는 것 자체가 그들을 이단으로 분류시키고 있습니다. 사실 여호와의 증인, 몰몬 그리고 다른 이단 종파에 속한 자들은 아주 “좋은 사람” 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진실하게 하나님을 찾고, 진리를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독인으로서 소망하는 바는 이단에 속한 많은 자들이 거짓을 분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두 구원의 진리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단에 빠지거나 거짓 종교에 빠진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질문: 이단에 빠지거나 거짓 종교에 빠진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답: 이단에 빠지거나 거짓 종교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그들의 눈을 여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4:4). 또 그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도록 구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님의 확신 없이 진리를 깨닫게 만들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6:7-11).
또한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서 그들이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이 만드신 변화들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1-2). 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5).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 능동적이고 담대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해야 합니다 (로마서 10:9-10). 우리는 항상 우리의 믿음을 보호하는데 준비되어 있어야 하지만 (베드로전서 3:15) 또한 온유함과 존경 가운데 그것들을 표현해야 합니다. 이단을 믿는 자들을 만났을 때, 한 기독인 친구가 복음을 전했습니다만 온유함과 존경하는 태도가 부족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단을 믿는 그 사람들이 그들의 태도나 행실 면에서 더 그리스도의 모습을 가졌습니다. 진리를 전달하는 면에 있어서는 승리하였으나, 결국 그 진리를 받을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는 패배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간증하는 영혼들을 위한 구원의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힘이자 능력이지 나의 노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변호를 할 수도 있고, 거짓 종교에 대한 지식을 갖추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나, 그 어떠한 준비도 이단과 거짓 종교에 빠진 사람들을 변절시키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성령님께서 직접 그들을 이끄시고, 확신 주시고, 완전히 돌아오게 하실 것을 신뢰하면서, 기도하고, 복음을 증언하고 그리고 그들 앞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거짓 선생이나 거짓 선지자를 어떻게 알아 차릴 수 있나?
질문: 거짓 선생이나 거짓 선지자를 어떻게 알아 차릴 수 있나?
대답: 예수님은 경고하시길,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심지어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들도 속일 것이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23-27; 베드로후서 3:3, 유다서 17-18). 거짓과 거짓 선생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모조품을 잘 집어내기 위해서는 진짜를 잘 알아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잘 구별” (디모데후서 2:15)하는 자와 성경을 주의 깊게 연구하는 자는 거짓 교리를 잘 발견해 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3:16-17에 있는 성부, 성자, 성령님의 역할에 대해 잘 읽어본 신자는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교리들은 즉시 의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공부한 후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을 가지고 다른 가르침들을 판단하는 것이 첫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무는 그 열매로 안다” (마태복음 12:33) 하셨는데, 이 열매를 볼 때, 어떤 가르침의 신빙성을 결정하기 위한 세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를 보세요. 마태복음 16:15에, 예수님이 묻기를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베드로가 대답하길,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대답으로 베드로는 축복 받습니다. 요한이서 9절에,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즉 다른 말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의 업적이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님의 하나님과의 동등함을 부정하거나, 예수의 대속죽음을 경시하거나, 예수님의 인성을 거부하는 자를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22을 보면, “거짓말 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둘째, 복음을 설교하는가? 를 보세요. 복음은 성경에 근거한 예수님의 죽음, 장사, 부활에 대한 복된 소식입니다 (고린도전서 15:1-4). 듣기에만 좋은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굶주린 자를 먹이기 원하십니다”, “ 하나님은 당신이 부자가 되길 원하십니다” 등의 말은 온전한 복음의 내용이 아닙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1:7에 경고한 것처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아무도, 그 어떤 유명한 설교자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를 변경할 권한은 없습니다. “만일 너희가 받은 것 이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갈라디아서 1:9).
셋째, 말하는 자가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품들을 나타내 보이고 있는가? 거짓 선생을 말하면서, 유다서 11은 말하길,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즉 거짓 선생은 교만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무시한 가인), 탐욕스럽고 (발람의 돈에 대한 예언), 반역적 입니다 (고라가 모세를 반역하여 자신을 내세운 것). 예수님은 그 열매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15-20)
더 많은 연구를 위해서는 특히 교회 안에서의 거짓 가르침을 언급한 갈라디아서, 베드로후서, 요한이서, 그리고 유다서를 보세요. 사실 거짓 교사와 거짓 선교사를 잘 집어내기란 어려운데, 그들은 양의 탈을 쓴 늑대일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탄과 마귀들은 “빛의 천사”로 가장하고 (고리도후서 11:14), 그의 졸개들은 의의 일꾼들로 가장한다 (고린도후서 11:15) 했습니다. 온전히 진리를 아는 것만이 가짜를 알아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라 하겠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누구이며, 그들이 믿는 신앙의 성격은?
질문: 여호와의 증인은 누구이며, 그들이 믿는 신앙의 성격은?
대답: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으로 알려진 종파는 1870년 펜실베니아의 찰스 타즈 러셀이 시작한 성경공부모임 “천년 새벽(Millennial Dawn) 성경 연구” 모임이 그 발단입니다. 찰스 러셀은 “천년 새벽”이라는 책을 6권의 시리즈로 내놓았는데, 지금 여호와의 증인의 대부분의 신학적 위치를 뒷받침합니다. 1916년 러셀이 죽은 후, 러셀의 친구이자 모임 계승자인 법관 J.F.루더포드는 천년 새벽의 7권과 마지막 편, “완성된 미스터리”를1917년에 완성합니다. 그리고 파숫군 성경과 그들의 정기 간행물은 1886년에 발간되기 시작한 이후 “천년 새벽” 운동이라 하여 급속도로 사람들에게 배포되었습니다. 계속되는 그 성경 공부반은 “제 2의 러셀들 (Russellites)”로 불리면서 지속되다가, 1931년 “성경 학생들(Bible Students)”로 자칭하면서 한 그룹이 떨어져 나온 후 “여호와의 증인(Jehovah’s Witnesses)”으로 자칭하며 남게 됩니다.
그럼 도대체 여호와의 증인들의 믿음은 무엇일까요? 여호와의 증인이 말하는 예수의 신성, 구원론, 삼위일체론, 성령론, 속죄론 등을 정밀히 살펴 보면 기독교 정통 교리와 다릅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를 천사장 미가엘과 같은 가장 높은 피조물로 보는데,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분명히 주장하는 많은 성경 구절과 대립됩니다 (요한복음 1:1, 14; 8:58; 10:30). 여호와의 증인은 구원은 믿음과 선행 그리고 순종에 의해 획득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성경은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라 합니다 (요한복음 3:16; 에베소서 2:8-9; 디도서 3:5). 여호와의 증인은 삼위 일체론을 부정하고, 예수를 한 피조물로, 성령을 하나님이 소유한 생명이 없는 힘으로 이해합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또 죄인을 대속하는 그리스도의 속죄 개념을 거부하고, 대신에 그리스도의 죽음은 아담의 죄 값만을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여호와의 증인은 성경과 부합되지 않은 자신들의 교리를 정당화 시킬까요? 첫째 교회는 여러 세기에 거쳐 성경을 부패시켰고 그래서 여호와 증인이 New World Translation 이라고 성경을 새롭게 번역하였습니다. 파숫꾼 성경과 정기 간행물은 자신들의 교리를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들에 비추어보아야 하는데, 잘못된 교리에 맞추어서 성경구절들을 변경시켰습니다. 그 번역판 성경은 사실 수 차례의 편집을 거쳤는데, 그 이유는 여호와 증인의 교리와 마찰되는 성경 구절을 발견한 만큼 편집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호와의 증인은 성경에 아주 미약한 근거를 둔 한 이단으로 보입니다. 파숫군 정기 간행물의 신앙과 교리는 찰스 T. 러셀, 법관 요셉 프랭클린 루더포드, 그리고 그들의 계승자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면서, 그 간행물을 집행하는 위원들만이 자신들이 하는 성경 해석의 권위를 옹호합니다. 즉 집행 위원의 성경 해석이 최종적인 성경 진리를 결정하며, 어떤 다른 개별적인 의견도 전혀 반영하지 않습니다. 이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권고 즉 하나님께 인정 받는 일꾼이 될 것과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부끄러움이 없을 것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15에 있는 그 권고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모든 신앙인들에게도 하시는 말씀으로, 우리도 베레아의 신자들처럼 매일 부지런히 말씀을 연구하여, 우리들이 배운 바가 하나님의 말씀과 부합되는지 검토해야 합니다.
여호와 증인의 자신의 신앙을 전하는 열정은 칭찬 받아야 합니다. 그들처럼 열정적인 종파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메시지는 오역과 속임 그리고 잘못된 교리들로 가득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와 증인들의 눈을 여셔서 진리의 복음과 말씀의 진실된 가르침 가운데로 인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몰몬교는 이단인가? 몰몬 교도들은 무엇을 믿는가?
질문: 몰몬교는 이단인가? 몰몬 교도들은 무엇을 믿는가?
대답: 몰몬교는 약 200년이 안 되는 시점에 죠셉 스미스 (Joseph Smith)가 창시했는데, 그는 주장하길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특별히 찾아오셔서 모든 교회와 그들의 사도신경은 가증스러운 것이라 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셉은 새 종교를 창시하고는 이 지구상 유일한 진실한 교회라고 합니다. 몰몬교가 가지는 문제점은 성경을 부정하고, 수정하며, 확대 해석하였습니다. 성경이 사실이 아니거나 충분하지 않다고 믿는 그리스도인은 없습니다.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은 성경을 믿는 다는 것인데,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것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디모데 후서 3:16)
몰몬교도는 신의 감동에 의해 쓰여진 성서는 유일한 것이 아니라 네 가지로 봅니다. 그 첫 번째는 성경으로 옳게 번역된 부분에 한해서 즉 옳지 않게 번역된 부분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둘째, 몰몬경은 스미스에 의해 번역되어 1803년도에 출판되었는데 스미스가 주장하길 몰몬경이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옳은 경전으로, 이 경전을 따르는 사람은 다른 어떤 책을 읽은 사람보다 하나님과 가까워 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셋째, 교리와 언약( the Doctrine and Covenant)인데, 복구되어온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관한 현대적 계시를 담고 있는 몰몬경으로 간주됩니다. 넷째, ‘큰 대가의 진주’는 몰몬이 주장하는 성경에 포함되지 못하고 잃어버려진 부분으로 지구 창조에 관한 자료로 주장됩니다.
몰몬교도는 하나님에 대해서 믿길 하나님은 항상 이 지구상의 최고 존재는 아니었지만, 바른 삶과 끈질긴 노력에 의해서 그런 지위를 얻게 되었다. 하나님 아버지는 인간처럼 만질 수 있는 육체와 뼈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또한 브림검 영이 가르친 바로,현대 몰몬교도들에 의해서는 버려졌지만, 아담은 사실 하나님이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도는 하나님은 오직 진실하신 한 분이시며 (신명기 6:5, 이사야 43:10, 44:6-8), 지금껏 항상 존재해 오셨고, 앞으로도 항상 존재하실 것이고 (신명기 33:27, 시편 90:2, 디모데전서 1:1), 하나님은 창조된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주이십니다 (창세기 1장, 시편 24:1; 이사야 3:16). 그는 완전하시며 그 어떤 자도 하나님과 비길 수 없습니다 (시편 86:8, 이사야 40:25). 하나님 아버지는 인간이 아니며 단 한번도 인간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민수기 23:19, 사무엘상 15:29, 호세아 11:9). 그는 영이시며 (요한복음 4:24), 영은 육과 뼈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24:39).
몰몬교도는 사후 세계가 여러 계층 혹은 다른 왕국으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천상 천국, 지상 천국, 어두운 외계가 그것입니다. 인류의 종말은 사는 동안 믿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행한 행위에 따라 달라진다고 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은 죽으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유무에 의해 천국 혹은 지옥에 간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가 육체를 벗어나는 것은 주님과 함께 함을 뜻합니다 (고린도후서 5:6-8). 불신자는 지옥으로 보내지거나 죽은 자들의 곳으로 갑니다 (누가복음 16:22-23). 예수가 다시 오실 때, 우리는 새 몸을 받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50-54).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을 것이고 (계시록 20:1), 불신자들은 영원한 불지옥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계시록 20:11-15). 죽은 후에는 또 다른 기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9:27).
몰몬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성육신은 하나님 아버지와 마리아의 육체적 관계의 결과라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은 하나의 신으로서 어떤 사람이던지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시며,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으로 영원히 존재하신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28:19). 아무도 하나님이 될 자격을 지닌 자는 없습니다, 오직 그 분 만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2:2). 인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시각으로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 예수님은 독생자 아들 (요한복음 3:16) 그리고 무죄의 흠 없는 삶을 사신 유일하신 분으로 지금은 천국에서 가장 높은 영광의 보좌에 계십니다 (히브리서 :26). 예수님과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하나인데, 예수님은 모든 것이 있기 전에 있어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1-8, 8:56). 예수님은 자신을 희생으로 주셨고, 하나님은 그를 죽음에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모든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빌립보서 2:6-11). 예수님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하십니다. 오직 그리스도에게 둔 믿음만입니다 (마태복음 19:26). 그리고 많은 자들이 예수님을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태복음 7:13). 모든 인간은 그들의 죄로 영원한 처벌을 받는 것이 마땅한데,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혜가 그에 대한 탈출구를 마련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 6:23).
분명하게도 구원을 받는 길은 단 한 가지인데, 그것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를 아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17, 3:28). 이 믿음을 가질 때, 자연히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세례를 받게 됩니다. 이는 구원의 조건이기 때문에 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영생은 내가 누구이던지 혹은 내가 무엇을 했던지 간에 받을 수 있는 선물입니다 (로마서 3:2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더라” (사도행전 4:12)
몰몬교도들은 대개 친절하고, 남을 사랑하고 좋은 사람들이지만, 잘못된 신앙에 관여되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구원의 길을 왜곡하는 거짓 종교에 속고 있습니다.
기독교도인은 타종교 믿음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
질문: 기독교도인은 타종교 믿음에 대하여 관용적이여야 하는가?
대답: 모든 것을 “수용”하는 우리 세대는 도덕적 상대주의를 가장 높은 미덕으로 추앙합니다. 모든 철학, 사상, 믿음 체계는 각기 모든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고 그리고 동일하게 존중해야 한다고 상대주의자들은 말합니다. 만약 한 믿음 체계를 다른 믿음보다 더 높게 보거나 혹은 절대적 진리를 주장하는 자들은 견식이 좁고, 덜 깨인 사람이거나 심지어는 편협한 사람으로 취급 받게 됩니다.
물론 다른 종교들이 서로 상호 배타적인 주장을 펼치고, 상대주의자들이 그 두드러진 모순들을 논리적으로 화해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말하지만 , 어떤 동양의 종교들은 환생(다시 태어남) 을 얘기합니다. 그럼, 사람은 한 번 죽는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여러 번 죽는다는 것입니까? 두 가지 가르침이 모두 진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상대주의자들은 이 복잡다양하면서 서로 모순되는 “진리들”을 모두 한데 공존시키려면 그들만의 진리를 재정의해야 한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도는 이것을 진리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단지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인격체로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인격 그 자체가 진리로 받아들이는 점이 오늘날 소위 말하는 “열린 마음”과 구별되게 합니다.
기독교 신자는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음을 (로마서 10:9-10) 공적으로 인정합니다. 만약 그들이 부활을 진실로 믿는데, 어떻게 열린 마음을 가진 자가 되어서 믿지 않는 자가 생각하듯이 예수는 결코 부활한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정확한 가르침을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에 대한 배반이 될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가장 근본이 되는 믿음을 논했습니다. 어떤 것들은, 예를 들어 그리스도의 육체의 부활은 타협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른 것들은 논쟁의 화두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히브리서의 저자는 누구인지, 바울이 가졌던 “육체의 가시”의 성격은 무엇인지 그리고 천사들의 수는 얼마나 되었는지 말입니다. 그러나 부차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논쟁하는 데 빠지는 것은 피해야 하겠습니다 (디모데후서 2:23; 디도서 3:9).
아주 두드러진 문제들을 가지고 논쟁하거나 대화할 때에라도, 기독교 신자는 절제하면서 존중을 나타내야 합니다. 왜냐면 한 입장을 반대하는 것과 한 사람을 반대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굳게 잡으면서 질문을 가진 자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넘치는 은혜와 진리로 꽉 차야 하겠습니다 ( 요한복음 1:14). 베드로는 묻는 질문에 답하면서 동시에 겸손할 것을 잘 전달했습니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항상 온유와 두렴움으로 하고” (베드로전서 3:15).